'로보'는 알고 있다.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토대로 옮겨놓은 자료. 책 안의 정해진 공식만 숙지하면 정답지의 답이 나오고 계산하는 방법은 지금도 여전하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면 흠 없는 세상이 될 텐데, 사람들은 왜 그 간단한 일조차 못 해 타인을 번거롭게 하는가.
자연스럽게 원하는 바를 이루는 공식은 이렇다. 조급한 마음에 하는 닦달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역효과를 일으켜 되려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지 못하게 한다. 되지도 않는 지적에 넘어가 감정을 내비치면 실수. 이를 인지했다면 곱씹고, 수용해서, 불통으로 느끼지 못하도록 치환해야만 이상적인 완벽이 된다. 아니더라도, 적어도 남들 눈에 보기에는 그렇다. 이제껏 그래왔고 지금도 응당 그래야만 하는데―
그림자 아래를 벗어나는 남자는 빛을 받게 두어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로보의 표정은 어둠과 함께 일그러졌다. 과하게 힘이 들어가 떨리는 손이 눈가를 덮는다. 암전 속에서 한번 몰아친 감정은 제가 눌러 압축시켰던 악몽만큼이나 단단했으니 터져 나오는 양도 방대했다. 누군가의 말을 따라 나아간 곳에서 시나리오가 강요한 인생의 방향을 인지하면, 속이 뒤틀리며 무의식 속 침전물이 잔뜩 부유한다. 그 안에서 겨우 이지를 잡아내 간신히 입을 열어 띄엄띄엄 단어를 이었다. 뒤엉킨 와중 마구잡이로 짚어내는 말들이라 저도 이해 되지 않음에도 막지 못한 것들이 잇새로 새어 나온다.
" …해야 하는 일에… 정해진 답이 있으면… 플롯을 따르면 간단한데, 왜… "
사고는 또 다른 누군가에 잠식되어, 결국은 그도 말한다.
" 망할 자식… 이런 개 같은 꿈이 필요 없는 게 누군데…… "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몽은 몸에 스며들어 익숙함을 넘어 스스로가 되었다. 선택한 적 없는, 선택하도록 만든 빌어먹을 이야기들. 실패한 구슬의 지대한 흠결. 그와 다를 바 없이 굴었음을 깨달으면 역겹기 짝이 없는 모든 것들이 욕지기가 되어 올라오는 기분에 잠시 가빠지는 호흡을 골랐다. 고개를 세워 폐부에 고인 깊은 숨을 빼내고 맑은 공기가 돌아들어 오도록 가다듬는다. 약간이나마 정신이 들었다. 그딴 감정은 중요하지 않아.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는 것들을 눌러 넣고 표정을 갈무리해야 한다. 얄팍한 웃음은 이제 소용 없으니, 최소한 아무렇지 않게는 보이도록. 생각이 정리되면 그제야 얼굴을 쓸어내려 닫아뒀던 눈꺼풀을 열고, 묵직하게 얹어진 손길을 피해 두어걸음 물러났다.
고개를 가로 젓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감정 배제의 실패는 오류.
정확한 상대 파악 실패도 오류.
지금 우선해야 할 건 플롯의 공략,
그리고 ■■■ ■■■■ ■■.
성과 도출을 위해 수정해야 할 요소들 몇 가지.
더 이상 포식자가 존재함을 인식시킬 필요는 없다.
가시적인 스트레스는 알아서 받아들일 것이다.
일순 실수했지만 옥죄는 방식은 그만둬야 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바람을 가둘 수 있다 착각한 게 패인이다.
몰아붙인다면 그는 바람도, 옷깃도 아닌 끝무렵에 죽어버린 아이가 될테니.
그렇다면 값은,
" ……아니. 내 실책이야. 감정이 앞섰어. "
" 당신 말이 맞아…. 모두 폐사시킬 순 없지. 그런데 난 흠이 있는 게 싫어서 전부 있지 않으면 안 되거든. "
" 눈앞에 멀쩡히 살아있는 자원을 없는 이로 칠 수는 없어. 단 하나의 열외라도 있다면 그건 완전하지 않으니까. 너도 마찬가지야. "
양손을 들어 공격 의사 없음의 제스처를 취한다. 어쨌든 필요한 헌터고, 이 이상 밉보여도 좋을 거 없다는 판단이다. 숙이고 들어가 자존심 상하고 배알 비틀리는 일이야 개인적 문제고, 이 불편한 얼굴 안 보도록 돌아서 다니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 나도 두 가지만 더. "
" 하나. 이 이상 네 방식에 손대지 않음을 약속할게. 대신 증명해 보여. 네가 말하는 물증 없는 믿음이 빈약하지 않다는 걸. "
" 둘. 약조했으니 따를 필요 없어. 단, 기억해. "
" …난 더 이상 실패하지 않아. "